욤비
지난 2013년 7월 1우리나라는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한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 발효국이 됐다정부는 인천 영종도에 출입국·외국인 지원센터일명 난민지원센터를 설립했지만외국인 범죄 등을 우려하며 혐오시설로 여겨온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속에 제대로 뿌리내리지못하고있는 상태다더욱이 난민법 시행에도 불구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난민을 받아들이는 비율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다영종도 주민들의 반발에서 보듯상당수 국민은 아직도 난민을 잠정적 범죄자로 인식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 쯤으로 여긴다.
지난 2002년 9월 콩고민주공화국 사람 욤비 토나씨가 입국했다콩고민주공화국의 소수부족 왕자였다는 그는 수도 킨샤사의 국립대 경제학과 졸업후 콩고 비밀정보국(ANR)에서 일하던 중 조셉 카빌라 정권의 비리를 야당에 전달한 혐의로 체포됐다국가기밀 유출죄로 옥고를 치르던 그는 극적으로 탈출,난민이 됐고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것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제네바 난민협약에 가입한 국가였기에 큰 걱정은 하지않았다고 한다하지만 그는 6년간 고군분투했고 소송을 치른 후에야 2008년 2월 난민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콩고에 남아있던 가족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인게 그해 8월이다.
인천 부평의 UIC시카고치과병원에서 글로벌 마케팅팀 직원으로 일하던 욤비 토나씨는 지난해 가을 광주대 자율융복합전공학부 조교수로 임용돼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콩고를 탈출한 뒤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하기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걸었던 그는 코스리와 인터뷰 내내 밝은 웃음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전했다.
욤비 토나씨는 한국에서 어려움 가운데 차별문제를 우선 꼽았다아직도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나를 처음 만나면 어디서 왔나’ ‘언제 돌아가나’ ‘왜왔나를 거침없이 물어봐요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하면 아프리카 사람이 어떻게 교수를 해요?’라고 물어요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에는 학교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슴아픈 기억 하나어느 날 욤비 토나씨가 서울 상봉버스터미널에서 복통으로 쓰러졌다행인들은술취한 흑인이 쓰러졌다며 사진 찍느라 바빴다고 한다병원에 실려간 뒤 긴급수술을 받았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많은 행인들이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칠뿐 아무도 돕지 않았다는 것다행히 지나가던 방글라데시 친구가 자신을 병원에 옮겨 주었지만 욤비 토나 씨는 아직도 이 기억은 큰 상처라고 했다.
콩고 정글 속 오두막에 6년을 숨어지낸 가족도 한국에 처음 도착해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한국 사람들의 시선을 얘기한다고 했다아직도 욤비 토나씨 부인은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해 집 밖으로 나오는길 꺼린다고 한다.
난민에 대한 이해가 적은 한국사회는 욤비 토나씨에게 큰 장애물이었다콩고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난민 신청을 한 그에게 난민신청 담당자들은 콩고대사관에서 여권이나 증명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콩고대사관과 연결된 사람을 통역으로 알선해주는 일도 있었다.
난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었다욤비 토나씨는 교회에서 밥을 먹기도했고공장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수술한 그에게 바로 일을 시켜 수술부위가 터지기도 했고돈을 안주고 도망간 사장도 많았다한 부족의 왕족으로콩고 중앙정보국의 엘리트로 생활했던 욤비 토나씨는 한국에서 난민생활을 하며 노숙자 같은 기분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인간극장에 출연한 욤비 토나씨를 김혁종 광주대학교 총장이 보고 직접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만남 이후 교수직을 제안받았고 현재는 광주대에서 평화와 인권을 강의하고 있다광주대측은 가족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도 제공했다.
한국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후회할 때도 있었지만 얻은 것도 많아요아이들이 왜 우리는 이게 없어요라고 말할 때 마음이 아프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것을 얻을까?’ 고민하라고 이야기해줘요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저는 아무 것도 갖지 못했지만 지금은 좋은 아파트좋은 차를 갖고있다는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생활이 즐겁지만 콩고 상황이 좋아지면 돌아가고싶다는 욤비 토나씨는 한국의 우리나라라는 말이 부럽다고 했다. “콩고사람들은 콩고라고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우리나라라고 한다국가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콩고 사람들도 이런 변화가 있길 바란다고 했다또 한국의 경제나 복지정책을 배워 콩고에 적용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한번은 비가 엄청 오는데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을 봤어요빨리 쫓아가서 우산을 건냈죠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냥 주고 왔어요우린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대가없이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잊고 지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제 우산을 받은 사람이 제 아들친구의 엄마였다는 거죠라며 인간의 도리와 선행을 이야기했다.
욤비 토나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난민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이 많이 발전했다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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