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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소장] 요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 포럼, 심포지엄이 풍성하다. 우리 사회에서 CSR에 정통하다는 사람들이 한두마디씩 보태고 있다. CSR이 이 시대의 화두인 건 분명해보인다.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고 사회공헌 성과를 드러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올해도 수많은 기업들이 여러 기관이나 언론사로부터 사회책임, 사회공헌과 관련한 갖가지 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국민들로부터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생각은 들지않는다. 오히려 뿌리깊은 반기업 정서에 힘겨워한다. 기업들의 CSR 활동은 제대로 방향을 잡고있는 걸까. 올바른 방향이라면 시간이 문제일 뿐 언젠가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면?

적지않은 토론회에서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를 신랄한 어조로 질타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사회책임투자에 정통한 네덜란드 연기금운용사 APG의 홍콩지사에서 일하는 박유경 이사는 한 포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업의 이사회는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경영진들을 철저히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경영진과 이사회가 따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친밀히 연결돼있어 이사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주주로서 한국 기업의 관계자와 대화를 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은 모든 안건이 CEO 중심이라는 것이다. 작은 요구에도 CEO가 원하지 않는다고 단번에 잘라 말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때로는 투자자를 향해 ‘그냥 주식을 팔아버리라’고 말할 때도 있다. 쌍방향의 의사소통이 단절된 문화는 사회책임투자영역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려야한다”
“한국기업을 방문하면 많은 CEO들이 ‘당신의 제안은 한국사회에서 먹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많다. 글로벌하게 CSR 활동을 염원하는 한국기업들의 CEO가 이렇게 대답한다”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기업, CEO 혹은 오너 한 사람의 입김에 좌우되는 기업, 한국적 경영을 고집하는 기업, 이런 의사결정 구조를 유지한 채 정상적인 CSR 활동이 가능할까.

그날 포럼에서 다른 발표자는 “이런 설명회나 세미나가 열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의 문제다. 특히 조직 의사결정 시스템의 중요성을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국적 기업이 요구하는 CSR에 대해 최고 의사결정자인 CEO들이 이런 교육 세미나에 관심이 없는게 사실이다”라고 기업 최고위층들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사회공헌과 동일시하는 모습도 자주 본다. 기부,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사회공헌 실적만 챙기는 CEO도 적지않다. 직원들이 전혀 자발적이지않은 자원봉사에 내몰리는게 다반사인 이유다. 비엔나대학 마틴 노이라이터 교수는 얼마전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CSR은 자선이나 기부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사회공헌이다. CSR은 비즈니스와 관련된 것이다. 네슬레의 코트디부아르 활동을 보자. 네슬레 때문에 아동들이 농장에 팔려가는 경우가 있다. 농부들은 네슬레에게 ‘이런 행위를 그만하라’고 요구한다. 비즈니스모델에 사람과 사회를 포함돼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기업활동 자체가 CSR에 연계돼있는게 글로벌 시장의 현실임을 소개한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장학재단 등 비영리법인을 만드는 기업, 기업주들도 비슷하다. 최근 한 오너기업인은 언론들과 만남에서 “내가 갖고 있는 장학재단을 통해 어떤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장학재단을 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가. 재단은 설립단계가 대단히 까다롭고 복잡하며, 사후 관리감독도 엄격하다. ‘내가 갖고있는 재단’이란 말이 쉽게 나오고, 그걸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정상이 아니다.

재단뿐 아니라 기업도 탄생하는 순간부터 주주와 임직원, 거래업체, 지역사회 주민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운명을 함께 한다. 개인이 만들었지만 기업이란 법인은 단순한 소유 차원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 상당수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여전히 ‘내 회사’, ‘내 재단’이란 생각을 갖고 ‘내 맘대로’ 경영한다면 CSR이 제 자리를 잡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CSR을 꽃피우려면 높은 분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는게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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