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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리 연구원

유누스는 2011년 5월 자신이 세운 그라민은행의 총재직에서 물러났다. 스스로 물러났다고 발표했고, 공식기록도 그렇게 남아있지만 누구도 자의에 의한 사임으로 보지않았다. 그의 총재직 사임에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방글라데시 정부와 유누스측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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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us Centre 원문 인용

2010년말 방글라데시 정부는 유누스가 법률상 정해진 정년을 넘겼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그라민은행에 해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외부에선 그의 해임에 정치적 배경이 내재돼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법률은 공직자가 60세에 퇴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법으로 운용되는 그라민은행에 정년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과 이미 60세인 2000년부터 방글라데시 은행감독당국이 유누스의 총재직 유지를 허용해온 점에서 나이를 걸고 넘어지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당시 “퇴직 연령보다는 정치적 압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고 전했다.

정치적 의혹을 제기하는 배경은 이렇다. 그라민은행의 성공과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다져온 유누스는 2007년 ‘나고리크 샤크티’(시민의 힘)를 창당하고 총선참여의사를 밝히며 정계 입문을 선언한다. “군부가 임명한 과도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같은 국가의 정치적 위기엔 유누스와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는 유누스 지지자들의 강력한 추천이 작용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유누스는 하시나 총리 등 기존 정치권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별 성과 없이 몇 달 만에 정계 진출을 포기한다. 이후 하시나 총리와 사이는 급격히 나빠졌고 서로를 비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하시나 총리는 유누스 박사에 대해 “서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고 비난했고, 유누스는 “방글라데시 정부는 부패로 가득하다”고 맞받아쳤다.

New York Times: Microlenders, Honored With Nobel, Are Struggling
New York Times: Microlenders, Honored With Nobel, Are Struggling

또 다른 쟁점은 유누스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적기업들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그라민은행이 소액대출과 무관한 회사들을 세워 은행 설립 취지를 흐렸다는 점도 비판했다. 유누스가 회장직을 맡은 50여개 사회적 기업들은 그라민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세워졌지만 주주들은 배당을 받지 못했다며 이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유누스는 “그라민이란 이름을 쓰는 회사의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고, 그라민은행에서 돈을 빌린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하시나 총리는 그라민은행이 방글라데시 최대 이동통신사인 그라민통신 등 자회사 수십 개를 거느린 거대기업으로 성장하자 “빈민구제라는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거듭 비판했다. 그라민은행 계열 중 하나인 그라민폰은 현재 방글라데시 통신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최대 통신사다. 증시 상장 후 현재 시가총액이 26억달러에 이른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유누스 일가가 이들 사업을 통해 재산을 불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서구언론은 유누스 박사가 오랫동안 가난과의 전쟁과 교육에 몰두하는 청빈한 삶을 살아왔다고 보도하고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누스를 인터뷰하러갔을 때, “그는 방글라데시의 찌는 더위에도 에어컨이 없는 아주 검소한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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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에는 노르웨이의 한 방송사가 ‘그라민은행이 기부금으로 받은 1억달러를 유누스가 자기 소유의 다른 회사로 빼돌렸다’는 내용을 방영해 파문을 일으켰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그라민은행이 노르웨이 정부의 기부금 1억달러를 지정된 방식으로 관리하지 않고 자회사에 넣었다는 의혹에 대해 실제 조사에 착수하며 압박을 가중시켰다. 노르웨이 정부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조사를 계속 진행했고 결국 무혐의로 밝혀졌다.

 New York Times: Microlenders, Honored With Nobel, Are Struggling
New York Times: Microlenders, Honored With Nobel, Are Struggling

당시 유누스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경계한 정치탄압이라고 규정하고,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견제가 해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법정싸움에 돌입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2011년 5월 유누스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고 정부는 은행측에 계속 유누스 해임 압력을 가했다. 유누스는 “은행 활동이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도록 직을 유지할 것”이란 성명을 내는 등 한동안 버텼지만 결국 일주일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Yunus Centre 원문 인용
Yunus Centre 원문 인용

당시 유누스 지지자들은 “방글라데시의 900만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무모한 정치적 압력으로 피해를 입지않고,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라민은행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고자 스스로 사임을 한 것”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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