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1

김보리 연구원

세계 빈민퇴치 운동을 인정받아 2006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한 그라민은행(Grameen Bank)과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한국의 수많은 사회적기업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다. 무보증 소액신용대출 (Microcredit)로 방글라데시 빈민들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준 이 조직과 인물에 한국은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달 한국고등교육재단 초청으로 방한해 대중강연을 펼친 유누스는 젊고 열정 가득한 청중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유누스와 그라민은행을 둘러싼 환경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무척 복잡다단하다. 유누스는 이미 몇 년전 그라민은행 총재직에서 떠밀리듯 내려왔고, 그라민은행은 방글라데시 정부의 국유화 움직임에 시달리고있다.

그라민은행과 유누스가 걸어온 길과 현재 벌어진 논란의 내용, 그 의미를 4차례에 걸쳐 분석한다. 첫째 주제는 그라민은행의 설립과정이다.
[편집자 註]


1940년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한 마을에서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은 무함마드 유누스는 30대에 접어들면서 안락한 삶을 뿌리치고 빈곤퇴치에 헌신하는 삶을 택한 인물이다.

1957년 다카대학 경제학과에 입학, 1961년부터 치타공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해온 유누스는 1965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1969년 벤더빌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들테네시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1972년 방글라데시로 귀국했다. 치타공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1974년 유누스는 대기근을 겪으며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방글라데시 전역에는 말도 안되는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있었다. 대부분 생존을 위해 대출을 받았지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빚이 불어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빈민들을 대상으로 노동착취를 하는 악덕 대부업자들의 횡포도 심했다. 대나무 발판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한 여인은 재료값 200원이 없어 대부업자들이 정해준 가격에 만든 물건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손에 쥔 수익은 고작 2원. 유누스는 학생들에 시장조사를 시켜 비슷한 처지에 있는 42명을 모으게 한 뒤 2700원을 빌려주었다. 1인당 64원에 불과한 작은 금액이었으나 결과는 놀라웠다. 수피아 카툰이라는 여성은 대나무 발판을 만들고 직접 팔아 2원의 600배가 넘는 1205원의 수익을 내게 된다.

이는 이윤창출만이 아니라 극빈층 여성들이 악덕 대부업자의 횡포에서 벗어나 스스로 설 수 있는 의지와 기반을 만들어 준 것이다. 유누스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다 적은 돈으로도 그들의 삶의 질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1976년 빈곤퇴치운동 및 빈곤극복방안으로 유누스는 조브라 마을에 그라민 실험 은행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소액 대출을 시작했다. 1983년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을 설립,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방글라데시 빈민들에게 담보나 보증 없이 소액신용대출을 해줌으로써 빈곤에서 탈출하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무함 은행출처: http://blog.naver.com/skatnr7110/150160891365

실제로 2006년까지 그라민은행은 60억 달러를 대출했고, 이에 힘입어 자립에 성공한 사람은 600만 명이 넘는다고 그라민은행측은 설명하고 있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어로 ‘마을 (village)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시골에 사는 840만명의 빈민 여성들이 이 은행의 주고객이다. 이들은 그라민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채무자이면서 동시에 주주다. 이사회도 이들을 대표해서 선출된 9명과 정부측 인사 4명으로 구성됐다.

현재 그라민은행은 무담보 소액신용대출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라민 주택융자’가 있다. 중앙은행에 주택융자프로그램을 신청해 12년동안 35만 가구에 집을 제공했으며 100%에 가까운 원금상환율을 기록했다. ‘그라민 의료시스템(회원들이 적은 비용으로 현대적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을 수 있는 의료시스템 구축)’과 ‘그라민 양어 재단(방치돼있는 저수지를 개발, 물고기를 키워 빈곤층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도 있다. 1997년에는 저소득층 사람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그라민 쉬카’라는 교육 기관도 설립했다.

유누스 이야기 ②-그라민은행을 둘러싼 논란  http://www.srwire.co.kr/bbs/board.php?bo_table=sr_se&wr_id=97

유누스 이야기 ③-그라민은행에서 쫒겨나다  http://www.srwire.co.kr/bbs/board.php?bo_table=sr_se&wr_id=98

유누스 이야기 ④-국유화 논란과 앞으로 길  http://www.srwire.co.kr/bbs/board.php?bo_table=sr_se&wr_id=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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