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코스리(KOSRI) 이도은 연구원] “우리 반은 여기야”라는 외침과 함께 몇몇의 아이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조그마한 손으로 학용품과 교재를 꺼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분주한 모습.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간식을 챙겨주고 총괄 담당자가 속속 도착하는 아이들을 각 반으로 안내한다. 네 교실에 흩어져 있는 베트남어 교사들이 한 명, 한 명 반갑게 맞이했다. 너나할 것 없이 연신 밝은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는 아이들은 모두 베트남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이들 만을 위한 작은 학교가 열린다.

지난 달 한 방송사에서 학교폭력과 관련한 기획물을 편성하면서 왕따, 빵셔틀(빵을 대신 사주는 등 심부름을 해주는 학생을 일컫는 신조어), 일진 등의 화두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따돌림 현상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생김새가 다르다’, ‘발음이 이상하다’라는 편견은 또래집단에서 배제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하나금융그룹과 세이브더칠드런이 손잡았다. 어머니 나라의 말과 문화를 접하고 자연스레 또래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다문화가정 아동지원 사업, ‘토요베트남 학교’다.

다문화가정 지원을 위한 거점장소 ‘다린’ 마련

2008년 10월에 개소한 토요베트남학교는 ‘하나키즈오브아시아‘라는 하나금융그룹의 사회공헌사업 대표 프로그램이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베트남학습 지원과 함께 전문가 자문을 받아 독자적인 교재개발 및 연구조사를 하고 있다. (http://www.kidsofasia.or.kr/ 참조) 하나금융그룹 내에서 다문화 관련 사회공헌 사업을 실시하게 된 배경에 대해 하나금융그룹 사회문화팀 김현수 과장은 “’하나‘라는 이름이 가지는 브랜드 이미지와 ‘다문화’라는 대상의 특성이 연결되는 점을 착안해 사회공헌 사업을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러 아시아국가 중 베트남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세이브더칠드런의 다문화팀 김해은 담당자는 “국내 결혼이주여성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1위가 중국(조선족 포함), 2위가 일본, 3위가 베트남이었으나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 문화적 영향력이나 사회적 편견, 가족 내 엄마의 지위가 문제되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2011년 8월 본격적인 사회공헌 사업운영을 위해 하나다문화센터 ‘다린’이 설립됐다. 다문화가족의 구성원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선린회‘라는 NGO가 운영을 맡고 평일에서부터 주말까지 한국어, 요리 교실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과 하나은행의 특성을 살린 금융교육 등을 진행 중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매주 여는 토요베트남학교도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

한성대입구 3번 출구를 나오면 하나은행 건물 3층에 위치한 하나 다문화센터 ‘다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성대입구 3번 출구를 나오면 하나은행 건물 3층에 위치한 하나 다문화센터 ‘다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력에 따른 소수정예 베트남어 학습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너무’, ‘잘생겼다’와 같은 베트남어 단어들을 곧 잘 따라하며 배워갔다. 자기소개에 관한 표현들을 익히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베트남어로 묻기도 하고 그러다 한국말로 대답하기도 했다. 간혹 집중을 못하는 아동이 있었지만 선생님의 질문에 다시 진지한 눈빛을 비춘다. CD를 틀어놓고 듣기 공부를 하고 칠판 앞에 나가 베트남 단어를 써보기도 한다. 수업을 마칠 때 쯤 다음시간까지 해올 숙제가 주어지자 나지막하게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야지”하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베트남어 실력은 개인별 차이가 큰 편이라고 한다. 이제 막 베트남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부터 베트남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 아이까지 다양하단다. 30여명의 학생들이 수준에 따라 초급반, 중급반(2개), 고급반으로 나뉜다. 초급반은 알파벳을 가르치는 수준으로 전체 수업의 20%정도만 베트남어를 사용하는 반면, 중급반은 절반의 비율로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사용한다. 고급반 학생들은 실제로 엄마와의 대화에 문제가 없는 친구들로 쓰기실력 보충을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며 수업의 90%정도가 베트남어로 이루어진다.

이주여성과 베트남 유학생, 원어민 선생님으로 활약

토요베트남학교는 서울지역에 이어 약 1년 간격으로 인천, 안산, 부천지역에 차례로 개소했다. 전국 도시별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베트남 다문화가정 아동 수를 고려해 지역을 선정했다. 4개 지역에서 총 120여명의 아이들이 원어민 교사에게 베트남어를 지도받고 있다. 서울 토요베트남학교의 교사는 모두 5명의 베트남 유학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머지 세 지역에서는 결혼이주여성도 원어민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사 선발기준은 유학생의 경우 베트남 학사, 한국 석사 이상이어야 하고 결혼이주여성일 경우는 한국어 능력 시험에서 중급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서울 토요베트남학교에서 주임 선생님 역할을 맡고 있는 트란휴트리씨는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다른 교사들의 일정을 관리하고 교재개발을 주로 담당한다. 고급반 수업을 맡기도 하는데,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릴 만큼 수업시간만은 엄격하게 아이들을 지도한다. 그는 “열심히 안하는 학생들이 있어 종종 힘들 때도 있다”고 말했지만 “매 주 마다 내 이름을 불러주고 안아주는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며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서울 토요베트남학교 고급반 학생들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트란휴트리씨.
서울 토요베트남학교 고급반 학생들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트란휴트리씨.

덧붙여 “한국 사람들이 아직 다문화에 익숙하지 않지만 하나은행의 지원으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잘 성장해 가서 좋다”며 토요베트남학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이 베트남어와 한국어 모두 잘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통번역사와 같은 전문직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김해은 담당자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 외에도 아이들에게 엄마나라에 대한 인상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며 교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연스레 원만한 또래관계 형성

40분간의 수업 후 쉬는 시간. 초등학교 교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아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신이 났다. 서울 토요베트남학교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남자선생님에게 매달려 장난도 치고 교실 한편에는 원어민선생님 주위로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이 보였다. 어느 하나 소외되지 않고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려 노는 아이들에게서 그늘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세이브더칠드런의 총괄담당자는 마이크를 들고 ‘쉬는 시간 끝!’이라 말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토요베트남학교의 교육 대상은 초등학생으로 어머니의 나라가 베트남인 아동 중 연령, 소득수준과 참여의지, 근접거리 등을 고려해 선발한다. 참여기간은 아동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다. 다른 교육지원 사업에 비해 지원기간이 긴 편인데, 지속적인 학습지원 뿐만 아니라 또래관계가 중요한 아동 시기에 교우관계를 형성할 기회도 제공해 주고 있다. 이런 장점 때문일까. 공식적인 모집 공고를 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별로 대기 아동이 10명 이상씩 되는 상황이다.

각국의 문화 이해를 통한 정체성 정립

토요베트남학교에서는 베트남어 학습과 함께 문화활동을 중요시한다. 매월 둘째, 넷째 주에 실시하는 문화활동은 보통 둘째 주는 베트남 문화, 넷째 주에는 한국문화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아이들의 엄마나라와 아빠나라를 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장놀이, 연극, 동화 등을 주제로 다양하게 진행됐다.

올해로 열두 살이 된 유황남군은 감기가 걸려서 아픈 날을 빼고는 1년 넘게 꼬박꼬박 출석한 모범생이다. 가장 재미있었던 수업은 베트남 시장 놀이였다고 한다. “베트남 화폐를 가지고 꽃을 팔았다”며 자기가 한 역할을 소개했다. 유군에게 긴 베트남 단어는 아직 어렵지만 이곳에서 여러 친구들을 사귀어서 즐겁다고 말했다. 문화활동 안에서도 베트남어 학습이 이어지므로 자연스레 학습효과와 연결된다. 자체 베트남어 평가에서 꾸준히 성적이 오르고 있으며 ‘엄마나라 말하기 대회’에서 수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황남군과 트란휴트리씨의 모습과 다양한 문화활동 현장. (시계방향 순으로 시장놀이, 베트남 전통춤인 무어쌉, 월남쌈 만들기)
유황남군과 트란휴트리씨의 모습과 다양한 문화활동 현장. (시계방향 순으로 시장놀이, 베트남 전통춤인 무어쌉, 월남쌈 만들기)
하나금융그룹은 2011년 지속가능보고서에서 밝혔듯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일방적으로 전달해 온 기존 교육 프로그램과 달리 어머니, 아버지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교육하고 있다’는 것을 토요베트남학교의 특징으로 꼽았다. 시혜적이고 단편적인 지원을 넘어 다문화가정 아동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결혼이주여성에게도 원어민교사라는 역할을 부여했다. 독립적인 지원기관을 설립해 아동간의 또래 관계 형성을 조명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올해로 6년 째 진행되고 있는 하나키즈오브아시아의 토요베트남학교는 오는 3월 또 한 번의 입학식을 가질 예정이다. 앞으로 국가권과 대상 아동의 폭을 넓힐 계획이며, 지금까지 축적한 노하우를 유사한 사업을 하려는 기관들에게 전파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문화 관련 사회공헌사업의 선두자 역할을 하며 토요베트남학교를 하나금융그룹과 세이브더칠드런의 고유한 사업 모델로 발전시킬 전망이다.[사진제공=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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