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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포레스터(Jay W. Forrester, 1918.7.14 ~ 2016.11.16) MIT 교수가 지난달 16일 영면했다. 그는 컴퓨터 모델링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컴퓨터 모델링 기법과 그 중 하나의 방법론인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1940~50년 대에는 현재 컴퓨터 메모리로 사용되는 램(RAM: Random Access Memory)의 개발에 참여했다. 1961년에는 ‘채찍효과(bullwhip effect)’라고도 불리는 ‘포레스터 효과(Forrester effect)’를 설명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업적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대중적으로도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달착륙을 꿈꾸는 등 무한발전의 꿈이 지구를 뒤덮고 있던 1968년, 이탈리아의 사업가 아우렐리오 페세치(Aurelio Peccei)의 주도로 급속한 공업화가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지구의 유한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유럽의 경영자, 과학자, 교육자 등이 로마에 모여 회의를 가졌다. 이를 로마클럽(Club of Rome)이라고 한다. 이들은 천연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등 인류의 위기 타개를 모색, 경고·조언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로마클럽은 ‘인류가 특정 정책들을 따르면 향후 130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주제로 ‘인류의 위기적 상황에 대한 프로젝트(Project on the Predicament of Mankind)’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MIT 교수였던 포레스터 교수에게 맡겨졌고, 그는 제자인 데니스 메도우즈(Dennis L. Meadows)와 도넬라 메도우즈(Donella L. Meadows)를 주저자로, 그리고 요르겐 랜더스 (Jorgen Randers)와 윌리엄 베른 3세 (William W. Behrens Ⅲ)를 공동연구자로 한 ‘시스템 다이내믹스 그룹(Systems Dynamics Group)’에게 이 연구를 맡겼다. 2년간의 연구 끝에 이들은 모든 데이터와 이론을 통합할 수 있는 “월드3″라는 모델을 만들었고, 이 모델은 포레스터 교수의 시스템 다이내믹스 방법론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들은 10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였으며 “지금과 같은 추세로 세계인구와 산업화, 오염, 식량생산, 자원 약탈이 변함없이 지속된다면 지구는 앞으로 100년 안에 성장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는 내용의 “인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 보고서”를 로마클럽에 제출한다. 이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책이 “성장의 한계”이다. 이 “성장의 한계”의 업적으로는 ‘위기에 대한 인식과 공감’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지속가능성’이란 “특정한 과정이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지속가능성’ 개념의 발전을 살펴보면, 1972년 ‘스웨덴 유엔인간환경회의(일명 스톡홀롬 회의)’에서 발표된 ‘스톡홀롬 선언’을 그 효시로 볼 수 있다. ‘스톡홀롬 선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6. (중략)… 무지와 무관심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고, 의존하고 있는 이 지구환경에 막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입힐 수 있다. 반대로 더 많은 지식과 더 지혜로운 행동으로 우리는 인간의 필요, 소망과 더욱 조화를 이루는 환경에서의 더 나은 삶을 우리 자신과 후대에 전할 수 있다. (중략)…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인간환경을 지키고 개선하는 것은 세계경제사회발전과 평화의 기본적이고 확립적인 목표와 함께 모두 추구해야 할 인류를 위한 필수적인 목표이다.”

‘스톡홀롬 선언’은 미래지향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회의의 결론에서는 공동의 노력을 촉구하며 26가지 원칙을 공표하였다. 특히 ‘미래’를 특정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원칙 1: (중략)… 동시에 현재와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개선하고 보호해야 할 엄중한 책임을 갖는다…(중략)

원칙 2: 자연 생태계를 대표하는 공기, 물, 토양, 동식물과 같이 이 지구상의 천연자원은 적절하고 주의 깊게 계획 또는 준비되어서 현재와 미래세대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중략)…

원칙 5: 재생 불가능한 지구의 자원은 앞으로의 고갈위험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하고 그로 인한 이득은 모든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 (중략)…

원칙 11: 모든 국가의 환경정책은 개발도상국들의 현재와 미래의 발전 잠재력을 높이고 그에 불리한 영향을 주어서는 안되며 모두를 위한 더 나은 환경조성달성에 방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생략).”

이상에서 보듯, ‘스톡홀롬 선언’은 아직 지속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수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수사학적인 한계 안에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공유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스톡홀롬 선언’과 같은 1972년에 제시된 ‘성장의 한계’가 훨씬 높은 수준의 위험에 대한 인식, 특히 위험의 수준, 위험의 원인에 대한 이해가 구체적이고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유엔인간환경회의’은 인류 최초로 ‘미래에 대한 준비’에 대해 합의된 정치적 성과를 제시했다는 성과는 주목할 만 하다. 이 성과로 ‘스톡홀롬 선언’의 채택 외에도 유엔환경프로그램(UNEP)의 설립이라는 성과도 주목할 만 하다. 이 유엔환경프로그램을 주목해야하는 이유로는 이 유엔환경프로그램이 1983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 일명 브룬트란트 위원회)의 설립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 있다.

1983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의 성과로는 2000년대를 향한 장기 지구환경보전전략을 수립하도록 한 점을 들 수 있다. 그 결과 1987년, “우리 공동의 미래(일명 브룬트란트 보고서: The Brundtland Report)”에서 ‘환경적으로 건전하며 지속가능한 성장(ESSD: 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 약칭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development, SD)’가 제시되었다. “브룬트란트 보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성장”으로 정의하였다. 이 “브룬트란트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널리 반향을 일으켰고,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개념도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1988년, 유엔총회에서는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권고된 ‘지속가능한 성장’의 개념을 UN 및 각국정부의 기본이념으로 삼을 것을 결의하였다. 이어 1989년 유엔총회에서는 ‘스톡홀름 회의’ 20주년을 기념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범세계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대규모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결과로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환경 및 개발에 관한 유엔 회의(UNCED: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약칭 UN환경개발회의)’가 개최되었다.

‘리우회의(Rio Summit)’ 혹은 ‘지구정상회담(Earth Summit)’이라고도 불리는 이 회의에는 전 세계 185개국 정부 대표단과 114개국 정상 및 정부 수반들이 참여하여 지구 환경 보전에 대한 논의가 한단계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의에서 지구환경질서의 기본원칙을 규정한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Rio Declarat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약칭 리우 선언)’과 환경실천계획인 ‘의제21(Agenda 21)’이 채택되는데 이로 인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용어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UNFCCC: 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약칭 기후변화협약)’, 종의 보존을 위한 ‘생물학적 다양성 보존조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삼림보존을 위한 원칙(Forest Principles)’ 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리우회의’의 결과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노력과 발전을 이루었다. 일부 국가와 이익집단의 반대로 여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1994년에는 ‘유엔 사막화 방지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 약칭 UNCCD)’이 체결되고, 2015년에는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이 체결되는 등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1972년 스톡홀롬 회의에서 이후 ‘지속가능한 성장’은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환경중심적인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보다 자세하고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논의와 발전은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그 이면의 역할과 한계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 즉, 앞서 길게 언급한 다양한 협약과 협정의 체결 및 발전 등은 ‘정치적인 행태’이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적 행태’라 함은 이미 1972년 ‘성장의 한계’와 ‘스톡홀롬 선언’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기술적 논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과 해답은 누가 찾는가?

과연 문제를 제기한 ‘성장의 한계’ 40년 후인 현재로부터 다시 100년 후는?”

과연 온실가스 배출 등 제시된 문제만 해결하면 인류와 지구는 지속가능한가?”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누가 주목하고 있는가? 모두 40년 전 ‘성장의 한계’가 제시한 결론에만 주목하고 피상적으로 그에 대한 대안만 제시하는데 경주하고 있지 않는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1972년에 100년 후를 예측한 ‘성장의 한계’는 이미 예측의 거의 절반인 40년이 경과됬다. 그렇다면 남은 60년 동안과 그 후에는 무슨 의미일까? 과연 이 40여년 전 논의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성장의 한계’가 출간되었을 때, 많은 비판에 직면하였다. 30여년이 지난 2000년대에 이를 때까지 성장의 한계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이론적인 비판일 뿐이라고 비난 받았다. 예를 들어, 북극과 남극에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축소와 지속적인 빙하, 영구 동토층, 해빙의 감소 등이 나타났을 때도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극지방 이외의 인류가 생존하는 지역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한 기후와 폭염의 증가, 가뭄과 폭우, 해양 산성화와 종의 멸종도 발생하였다. 인간 생활에서는 농업 수확량의 감소와 이로 인한 기후변화 난민의 발생 등에 주목하고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막상 눈앞에 현실적으로 다가오자 그제서야 인류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리우 회의’의 결과물 중 하나인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에서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제시한 2℃ 감소목표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온난화가 가시화되고 지구 전체에 이상이 발생하기 전인 1997년, 그 원인인 탄소배출 규제 등을 포함한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 연합 규약의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 to 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약칭 교토의정서)’가 일부 국가와 이익집단에 무시당하고 거부당했다. 그러나 ‘교토의정서’의 내용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2015년 ‘파리 협정’으로 실천적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도 1997년 ‘교토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2015년 ‘파리 협정’을 비준하였다.

‘파리 협정’은 11월 4일 공식적으로 전세계에 발효되어 ‘글로벌 신기후체제’라고 불리는 새로운 기준의 시대가 열렸다. 반기문 유엔 총장은 ‘파리 협정’ 발효에 대해 “한때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어졌다”고 평가하였다. 한국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37% 배출량 절감 계획을 제출하였고 올해 안에 협정을 비준할 계획이다. 이렇게 ‘지속가능한 성장’이 다른 기준에 의해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슈는 이 뿐만이 아니다. 다윈(Charles R. Darwin)이 1859년 “종의 기원”을 통해 대중적으로 ‘진화론’을 공개한 이후 인류는 ‘진화’와 ‘성장’, 그리고 ‘발전’을 동일시 하며 기존보다 효과적이고 편리해지는 ‘개선’을 ‘좋음’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좋음’에 매료되었다. 이 새로운 ‘좋음’은 인류를 무한경쟁 체제로 몰아넣었다. 이는 ‘시장중심 자본주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1867년 마르크스(Karl H. Marx)가 발표한 “자본론”에서 말하는 ‘역사 발전 단계론’ 역시 진화론의 일종이다. 다윈과 마르크스 등 진화론자들은 인류에게는 르네상스 최고의 유산을 선물했다. 왜냐하면 주지하다시피, ‘진화론’은 ‘창조론’과 대립되는 대표적인 이론이기 때문에 르네상스 정신인 ‘인본주의’를 대표한다. 인본주의는 종교적 세계관이나 신이 주재하는 세상이 아닌, 즉 종교적 세계관이나 신의 전지전능함이 없어도 유지되고, 심지어 좋아지는 세상을 인간 입장에서 설명하는 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이야말로 완전히 종교나 신의 전지전능함이 없어도 알아서 “잘 되는” 세상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대표적인 탈 종교화, 탈 신권화 즉 르네상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을 내포한 ‘진화론’적 관점에는 달을 항해 아폴로 로켓을 발사하던 시절이 잘 부합된다. 왜냐하면 성장이 미덕이고 성장이 발전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인류만 알아서 성장하고 발전하면 됬다. 다시 말하자면, 성장과 발전은 환경과 미래는 고려치 않는 현재의 인류 만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모두가 ‘진화론’적 관점에 열광했기 때문에 미국과 서방세계는 ‘스푸트니크 쇼크’를 겪었고, 또 이에 대해 케네디 대통령은 무모하기까지 했던 우주계획 선언했고, 대중은 이에 환호했다. 또한 1969년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딜 때 열광했으며, 그들이 귀환한 후에 그들은 영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몇몇 국가들이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성장’의 본질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성장’은 ‘진화론’에 대한 ‘변증법’적 산물이다. 헤겔(G.W.F. Hegel)이 집대성한 ‘변증법’적 관점에서는 원래부터 정리된 하나의 주장인 ‘정(正: These)‘, ‘정’이 내적 모순으로 낳은 대립명제(對立命題)인 ‘반(反: Antithese)’, 그리고 정립·반정립의 모순의 통일인 ‘합(合: Synthese)’로 구성된다. 이 관점을 적용하면 ‘진화론’은 ‘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인 ‘진화론’이 무한경쟁을 야기하여 환경오염을 위시한 각종 내적 모순을 일으켰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이다. 따라서 이 각종 부작용을 ‘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반’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산량 증가를 ‘정’이라고 하면, 생산의 증가에서 야기되는 ‘환경오염’을 ‘반’으로, 이에 대한 해법으로써 ‘파리 협정’ 이후 ‘글로벌 신기후체제’를 ‘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성장의 한계’가 ‘반’에 해당하는 이슈를 제시하는 역할을 했을 때, 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파리 협정’ 등의 노력과 ‘글로벌 신기후체제’의 ‘합’이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속가능한 성장’에 있어서 ‘성장의 한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1972년 당시 ‘스톡홀롬 선언’이 ‘성장의 한계’의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지속가능한 성장’에 있어서 ‘성장의 한계’가 명확하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2016년에도 ‘성장의 한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성장의 한계’를 도출해 낸 ‘시스템 다이내믹스 그룹’의 컴퓨팅 모델인 ‘월드3’는 제이 포레스터 교수의 ‘시스템 다이내믹스’ 방법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현재 한국에도 한국 시스템다이내믹스 학회를 중심으로 포레스터 교수의 ‘시스템 다이내믹스’ 방법론을 통해 세상의 문제를 도출하는 ‘반’의 역할을 수행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로 제기되어 여러차례 방송 등 언론에서도 언급되었고, 정부 정책에 중요한 미래 변수로 고려되고 있는 개념인 ‘인구 절벽’과 ‘빈집 문제’ 등이 있다. 이들도 포레스터 교수의 유산인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통해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100년 후 한국사회 연구를 목적으로 설계한 예측 모델에서 도출된 연구성과들이다. 과거 ‘성장의 한계’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스템 다이내믹스 그룹’의 예측 모델인 ‘월드3’처럼, 지금도 연구자들이100년 후 한국사회를 예측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반’ 즉 피해가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해야 ‘정’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정’이 제공하는 효익(效益)에 심취하면, 이면의 문제와 그 피해인 ‘반’을 간과하기 쉽다. ‘진화론’이 가져다 준 달콤한 유혹의 이면에 있는 독을 맛볼 때 비로소 그 유혹이 항상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대중은 ‘지속가능한 성장’인 ‘파리 협정’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반’에 관심을 갖는 대중은 극히 소수이다. ‘정’이 무조건 잘못됬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정’이 야기할 수 있는 ‘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을 가끔을 생각해 보고, 그들이 제시하는 예측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로는 당혹스럽더라도, 한번쯤 ‘합리적 의심’을 해 본다면, 수많은 노력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합’의 등장을 기다리기 전에 ‘반’의 폐해를 견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비용과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합’ 보다도 더 큰 의미의 선제적 ‘지속가능성’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에 대한 예측과 검증을 수행하고 있는 강력한 방법론인 ‘시스템 다이내믹스’ 창시자 제이 포레스터 교수의 영면을 추모하고 그의 업적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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