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했다. 갑자기 공상과학만화에서 보았던 미래의 이미지들이 현실 속에 범람한다. 식당에서, 거리에서, 학교에서, 뉴스에서 우리는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이 작용하게 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주된 서사는 환상과 공포다. 인공지능에 대한 환상이라고 하면 인공지능이 창출해 낼 편리와 합리성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하겠다. 그 반대편엔 공포도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통제하거나, 인간과 경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진정한 승자는 인류”라는 주장은 환상과 공포 사이에서 한 조각 위안을 준다. 그러나 인간만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것들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서간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재감을 흔드는 사건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란 것을 이해하기 위해 주고받던 이야기는 어느새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도대체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하는 의사결정은 믿을만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알파고에게 바둑은 게임이다. 그래서 기세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알파고에게 승과 패는 그저 성립 가능한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승패에 연연한다. 승리에 미련을 두면서도 기세에서 밀리지 않으려 드는 자존심, 유리한 국면에서도 패배를 두려워하는 불안이 인간에겐 있다. 실리와 두터움 사이에서의 선택에는 돌을 들고 있는 사람 개개인의 고유성이 반영된다. 굳이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진 이유를 찾으라면,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적인 것 때문에 인공지능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의 가치란 무엇일까?

너무 어려운 주제다. 쉽게 생각해보기 위해 바둑의 자리에 ‘게임’을, 인간의 자리에 ‘인생’을 넣어본다. 조금 더 선명해진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사람은 바둑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삶은 바꿔치기 하거나 작전의 일환으로 소모해버릴 수 없는, 등가적인 교환이 불가능한 가치를 가진다. 물론 사람의 생명이 소모품처럼 쓰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인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도 진화 중인 민주주의일 것이다. 사람의 소득과 재산, 사회적 지위와 지식, 경험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1표의 평등적 권리를 주는 의사결정의 체계 말이다.

민주주의는 논란이 많은 제도다. 모든 개인들이 지닌 의사를 모아 내린 의사 결정이 단 한 명의 천재의 의사결정보다 좋은 결과를 산출한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다수가 역사를 망친 예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또한 지혜로운 독재자가 민중을 잘 이끌어 놀라운 성공에 도달한 예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가 우월하다고 믿으며 지지한다. 왜 일까?

아마 ‘책임’ 때문일 것이다. 한 명의 독재자나 인공지능은 분명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의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책임질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선택으로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결정을 저지른 사람 혼자 감당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진다. 오판을 저지르더라도, 책임을 지며 다음 선택에선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자기 학습과 토론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민주주의는 발달한다. 선택의 자유와 책임의 조화로, 민주주의는 느리지만 존중받을만한 시스템이 된다.

인간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또 하나의 바둑이 떠오른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 시즌2. 미생 시즌1이 대기업 인턴 장그래의 분투를 그렸다면, 미생 시즌2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중소기업의 도전과 불안을 그리고 있다. 기나긴 싸움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단 두 집, 그러나 두 집을 얻기 위해 판 전체를 걸어야 하니 쉬운 싸움이 아니다. 미생의 주인공들은 게임 안에 있지 않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좁다. 그들은 계약서의 숫자 하나가 자신과 가족의 삶을 결정하고, 나의 작은 선택이 동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이 두는 한 수 한 수는 번복할 수 없는 무거움을 가진다. 책임에 대한 인식의 철저함으로 미생은 우리 시대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명작의 반열에 오른다. 의사결정의 책임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 정비된 논리체계와 매뉴얼을 갖추고 합리적인 계산을 해내는 것만큼 중요하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서도 마찬가지다.

1996년에 사람들은 전화선을 연결해서 파란화면의 PC통신을 사용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5년에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가 등장했고, 다시 10년이 더 지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 변화의 속도가 놀랍다. 언젠가 아주 이른 미래에 인간은 인공지능과 함께 “무엇이 더 좋은 결정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더 좋은 결정인가 라는 하나의 질문 속에 담긴 수많은 인간적이며 사회적인 의미와 이미지를 인간은 부지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더불어 의사결정의 책임에 대한 인간의 의지도 커져야 한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아마 인간적인 것은 그저 낭만적인 것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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