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관심이 높아진 것만큼 인식이 개선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인권경영은 특히 그렇다. 노동조합 설립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진행되는 직원 사찰 사건이나,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로 자리 잡은 성, 학력, 장애에 대한 차별 등은 우리 기업이 넘어서야 할 당면 문제들이다. 특히 ‘현대판 음서제’라며 비판받고 있는 불공정한 채용절차는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UN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것이 1948년의 일이다. 1977년 국제사회의 개인과 비정부기구(NGO)들은 인종차별정책을 고수하는 백인정부 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들이 설리반 원칙에 서명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진출하지 않으면 최선이겠지만, 진출하더라도 인종차별이 없는 기업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로부터 1년 전인 1976년 OECD는 다국적기업이 경영활동에서 준수해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000년 발족한 유엔 글로벌 콤팩트는 10개의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개가 인권원칙이다. 기업은 국제적으로 선언된 인권보호를 지지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인권침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 러기 교수가 2008년 발표한 ‘유엔 기업과 인권 프레임워크’는 같은 해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인권경영에 대한 논의가 최근 들어 활기를 띠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의원은 지난달 29일 기업의 인권경영을 국가가 지원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인권존중기업 인증제도’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기업의 인권 실태를 조사해 그 결과가 우수한 기업을 등급별로 ‘인권존중 기업’으로 인증하고 인권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우수 기업은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계약의 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30개 공기업 대표와 87개 준정부 기관장에게 권고문을 보냈다. 기업마다 인권위가 제작한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인권 상황에 대해 자가 점검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공공기관이 인권경영을 추진하도록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인권경영 항목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물론 이런 흐름들로 인권경영이 극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인권의 개념 자체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이 보호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기업의 인권침해사례와 관련해 개선 또는 시정 권고 수준의 조치들이 이루어질 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유인과 구속력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인권’을 좌파의 전유물로 생각하거나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여기는 문화도 문제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인권경영 선언’이다. CSR와 인권경영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례가 ‘나이키의 아동 노동’이다. 1996년 라이프지에 실린 나이키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나이키에 대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나이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넓고 지속적이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했고 시행했다.

ILO의 아동 노동 철폐를 위한 국제프로그램(IPEC)이 아동 노동과 상관없다고 인증한 생산업체에서만 축구공을 구매하기로 했고, 아동 노동에 종사했던 아동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자립할 수 있는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한 ILO 조약에 기반한 행동 강령을 전개하고, 내부 모니터링과 제3자 모니터링을 혼합해 행동 강령의 준수를 위해 노력했다. 아동 노동에 대한 고민은 노동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경영 전체 시스템을 개혁했다. 기업 내의 인권침해 이슈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회사의 경영시스템 변화로까지 진화한 것이다.

그만큼 ‘인권’을 기업의 의사결정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일이다. 긴 시간과 분명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뤄둘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우리 회사를 관통하는 인권 이슈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다. 나의 지시를 받고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직원이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이고 자녀라고 생각하며 회사를 바라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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