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벗어난 CSR, CSV 논쟁 – 혼란은 어디서 왔나?
한국 기업들, 마이클 포터의 ‘CSR=사회공헌’ 논리에서 허우적
언론들은 뒤죽박죽 개념으로 혼란 부채질
CSR은 기업의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비윤리적 행동을 줄여나가는 전 과정

[한지희 기자]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와 마크 크래머(Mark R. Kramer)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Harvard Business Review)에 게재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 창출) 관련 글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자 상당수 기업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곧 발빠른 일부 기업들이 CSV라는 새로운 개념을 흡수, 기존 CSR팀을 CSV팀으로 ‘확대개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2013년과 2014년 실시한 코스리의 설문조사를 보면 기업에서 사회공헌 혹은 CSR을 담당하는 조직들은 ‘올해의 화두’로 단연 CSV를 꼽기도했다.

2011년 포터와 크래머는 ‘CSV는 CSR이 확장, 변형된 모습’(CSV is a transition and expansion from the concept of CSR)이라고 언급했는데 그들이 말한 CSR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CSR이 CSV로 변형됐다고 주장했을까. 우리나라 기업들이 말하는 CSR은 무엇일까.

포터와 크래머는 2006년 발표한 글에서 CSR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는 대신, 4가지 특징을 언급했다. 도덕적 의무(moral obligation), 지속가능성(Sustianailbity), 기업과 이해관계자간의 긍정적 관계(license to operate), 기업평판(reputation) 등 특징을 지닌 CSR은 기업의 생존 및 이미지 제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봤다. 그들은 4가지 특징을 지닌 CSR 활동들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기업이 역할을 보다 확대해야한다’는 의미로 CSV를 언급한다.

ISO26000 CSR 가이드라인에서 출발해야

2010년 국제표준기구(ISO)는 전문가들과 5년간의 논의를 거쳐 기업의 사회적책임 가이드라인 ISO26000을 발표했다. 논의에 참여한 77개국 중 93%의 찬성을 얻어 정리됐다. ISO26000 가이드라인은 기업이 의사결정 및 경영활동을 할 때 소속된 사회에 이익이 될 수 있어야한다는 책임을 강조했다. 특히 산업계, 정부, 소비자, 노동계, 비정부기구(NGO) 등 7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지배구조, 인권, 노동관행, 환경, 공정거래, 소비자이슈, 공동체 참여 및 개발 등 7대 의제를 사회적 책임 이슈로 규정했다.

ISO 26000이 공개된 후 FSG(마이클 포터가 설립한 비영리기구) 블로그에서는 CSR을 책임(Responsibility)으로 설명한다. 도덕적 의무,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유지를 위한 전략, 평판제고를 위한 전략으로서 CSR은 배제돼있다. ISO26000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2011년 포터와 크래머의 ‘CSR을 넘어선 CSR(CSV, moving beyond CSR)’은 성립하지 않는다. 포터와 크래머가 2006년 CSV와 차별화해 설명했던 CSR은 기업의 자선적 행동, 즉 사회공헌활동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코스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전문가들 대다수가 CSR의 개념을 ISO26000에 기반해 언급했다. EY한영회계법인 정영일 상무는 코스리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책임이란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 영향은 부정부패, 환경오염 등 사회문제를 말하는데, 해결이 시급한 경우가 많으므로 부정적 영향을 관리하는 데 먼저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ISO26000 가이드라인이 규정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 범위나 정 상무의 발언을 정리하자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돌려주기(Give back)이 아닌, 기업의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비윤리적 행동을 줄여나가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한국 기업들, 마이클 포터의 ‘CSR=사회공헌’ 논리에서 허우적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ISO26000이 규정하는 CSR과 마이클 포터가 제시한 CSV를 어떻게 실제로 적용하고 있을까. CSV가 화두로 떠오르며 많은 학자들과 기업 관계자들은 포터의 논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CSV는 무엇이며, CSV가 CSR과 어떻게 다른지, 성공사례는 무엇이며, 어떤 비전을 갖고있는지 등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CSV 사업의 타당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들은 포터와 크래머의 CSV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포터와 크래머가 2010년 ISO26000이 정립되기 이전에 이해한 CSR의 개념까지 기업들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즉, CSR을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한정해버렸다. 이에 따라 사회공헌 업무가 중심이었던 CSR팀을 CSV팀으로 개편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CSR을 ‘사회공헌 그 이상‘이라고 봤다면 기업들은 CSR팀을 없애는 대신 사업 내용을 개편하고 그에 필요한 역량을 키워나갔을게 분명하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CSR 팀을 CSV팀으로 신속히 개편했다.

‘CSR을 넘어 CSV로’를 주창하는 기업, CSR팀을 없애고 CSV팀을 개설한 기업은 “사회공헌을 넘어 전략적으로 사회에 이익이 되는 기업이 되고싶다”는 의지를 사내외에 널리 알렸다. 더 나은 기업이 되겠다는 선한 뜻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이처럼 CSR과 CSV를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이 과연 옳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CSR개념 혼용하는 언론사, 거기에 엉터리 자료주는 기업 홍보실

이 문제에 관한한 언론도 문제를 노출하고있다. ‘CSR은 사회공헌이다’라고 규정하는 기사들이 매우 흔하다. 물론, 우리 기업의 CSR 부서 대부분은 사회공헌활동을 주업무로 삼고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규범으로 정립된 CSR의 의미를 임의로 축소하는 경향까지 용인하기는 쉽지않다.

실제로 CSR 관련 뉴스나 칼럼을 보면 ‘CSR(사회공헌)’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한 언론사 내 부서와 기자마다 사용하는 단어도 제각기다. 지난 1월8일 서울경제신문은 한 기사에서 지난해 문을 연 제일모직의 CSR 플래그십 스토어를 ‘국내최초 CSR(사회공헌) 플래그십 스토어’로 소개했다. 지난 1월13일 이데일리는 신세계푸드의 웹진 ‘푸딩’ 창간 소식을 전하며 “비전, 문화, CSR(사회공헌활동) 등 분야별 사내전문가들이 필진에 참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12월24일 스포츠조선의 고양HiFC 대학생 서포터즈 예비소집 안내 기사에서는 “이벤트 개최 등 마케팅, 미디어, CSR(사회공헌활동)등 다양한 분야를 직접 경험하게 하여 스포츠산업의 이해와 실무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라고 표현했다.

원칙적으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올바른 표현이다. CSR(사회공헌)이란 표현은 CSR을 사회공헌의 차원으로 낮춰버린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또 상당수 언론은 CSV를 소개할 때 ‘CSR을 넘어선 CSV’란 문구를 계속 사용한다. 한 기업의 CSV사업 관련 기사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넘어 공유가치 창출(CSV) 경영을 확대하고 있다”라는 문장이 항상 등장한다. 이는 CSR과 CSV의 관계를 진화의 단계로 인식케한다는 점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 물론 언론이 이런 표현을 계속 쓰는 것은 해당 기업 홍보실이 보도자료에서 그렇게 서술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이 스스로 교정할 정도로 CSR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지는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적 합의 위해 전문가들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우리 기업들이 CSR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SPC 행복한 재단의 유승권 국장은 “기존의 CSR과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관계 역시 불분명하다. 섣부른 전망은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공헌활동=CSR 활동의 일부‘라는 시각도 경계하는 발언이다. ISO26000에 따르면 기업은 의사결정 및 실제 경영활동으로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여나가야 한다.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긍정적 영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한다면 이는 곧 기업의 사회적책임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CSR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혼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CSR과 사회공헌의 개념을 뒤섞어 사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의 CSR 사례에 관심이 많지만 국내에 바로 접목하긴 어렵다는 생각을 갖는다. CSR에 대한 이해가 개인마다 다른데다 특히 기업 내부에서조차 CSR의 내용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다. CSR 선진국들을 뒤따르려는 노력에 앞서, 국내기업들이 겪고있는 개념혼란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선 학계는 물론, 언론과 기업의 노력이 절실하다. EY 정 상무는 “CSR과 CSV의 정확한 의미가 국내에 정착되려면 관련 전문가들간 합의가 필요하다.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비용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해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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